KFTC LIFE 2

해가 지지 않는 여름, 백야의 여행기


백야가 이어지는 여름의 풍경은, ‘여행은 도시!’라는 저의 굳건했던 취향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끝없이 이어진 숲과 호수가 만들어내는 초록빛을 만끽한, 소소한 핀란드 여행기를 소개합니다. *_*

글과 사진, 외환업무팀 황수빈 계장

프롤로그

저는 학생 시절 ‘핀란드’라는 곳에서 잠시 지냈습니다. 교환학생의 본분에 맞게(?) 학업보다는 경험에 충실하여 오로라도 보고, 핀란드에 산다는 산타 할아버지도 만났지만 딱 하나 남은 아쉬움은 바로 푸릇푸릇한 여름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인데요, 그래서 올해는 한국의 무더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선선한 북유럽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 가는 길

(러시아를 제외하고) 핀란드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 국가입니다. 원래는 인천공항에서 8시간이면 갈 수 있었지만, 현재는 러·우 전쟁으로 유럽 항공사의 러시아 상공 진입이 제한되어 중앙아시아를 거치거나 북극 항로(!)를 이용하느라 약 14시간가량 소요됩니다.ㅠㅠ

수도인 헬싱키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북쪽에 가까이 위치한 수도로, 그만큼 겨울엔 해가 짧고, 여름에는 해가 오래 떠 있어 길고 긴 하루를 즐길 수 있는데요, 저는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 헬싱키에서 북서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Seinäjoki’라는 도시에 머무르며 새벽 4시쯤 해가 뜨고 밤 11시쯤 해가 지는 환경에서 생활했습니다.

밤 10시인데 여전히 밝은 풍경
반면 겨울에는··· 오후 3시에 노을을 볼 수 있답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호텔에는 한 줌의 햇빛도 허용하지 않는 두꺼운 암막 커튼이 설치되어 있는데요, 다행히 저는 백야와 무관하게 머리만 대면 잠에 드는 능력이 있어 큰 어려움을 겪진 않았습니다.

다만 한가지 예상치 못한 점은 바로 날씨였습니다. 북유럽은 한여름에도 항상 20도를 넘지 않는 선선하고 쾌적한 날씨를 자랑하지만, 전 세계를 강타한 이상기후를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머문 기간엔 곳곳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고, 산타클로스마저 두꺼운 산타복으로 인한 더위를 호소했습니다.

강렬한 더위를 예고하는 뉴스 일기예보
충분한 수분 섭취를 당부하는 산타 (출처:BBC)

🌲 자연

핀란드는 숲과 호수의 나라로, 국토의 70% 이상이 숲으로, 10%가량이 호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트레킹 코스의 상당수가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데요, 저는 이번 여행에서 스키 리조트로 유명한 simpsiö 공원에 방문했습니다.
추위에 대비해 여러 겹의 외투가 필요한 겨울과 달리, 여름 하이킹은 가볍게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산모기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얇은 옷은 세 겹도 가볍게 뚫고 들어온다는 공포스런 경험담에, 결국 뜨거운 햇살 아래 튼튼한 외투와 방충망 모자라는 요상한 복장이 탄생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맑은 하늘 아래 숲속은 마치 시간을 멈춘 듯 고요했고, 특히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끝없이 이어진 초록빛 숲은 여전히 잊지 못할 풍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더운 건 싫지만 모기는 무서운···
요정이 나타날 것 같은 숲

이 밖에도 여러 방식으로 핀란드에서 숲을 즐길 수 있는데요,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1. #1 – 숲과 바비큐

    열심히 걷다 보면 출출해지고, 숲에 있으면 바비큐가 생각나는 건 만국 공통이 아닐까요? 핀란드 역시 숲 곳곳에 캠프파이어를 위한 공간이 있고, 장작더미뿐 아니라 톱과 도끼(!)까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구비되어 있습니다.
    저희 일행은 그저 소시지만 준비해 갔는데, 온갖 재료를 요리하는 사람들의 준비성에 한 번 놀라고, 너무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본 탓인지 마시멜로를 나눠주시는 따뜻함에 두 번 놀랐습니다.

    숲에서 먹어서 그런지 더욱 맛있었던 소시지
    도끼는 나무에 꽂아두는 것이 매너라고···!
  2. #2 – 호수 수영

    핀란드에는 18만 개가 넘는 호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어디서나 쉽게 호수를 찾을 수 있고, 특히 여름에는 물만 보이면 뛰어드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에는 오히려 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데요, 바로 ‘avanto’라고 하는 얼음 수영입니다. 겨울철 호수가 꽝꽝 얼어붙으면, 마치 얼음낚시를 하듯이 얼음에 큰 구멍을 뚫어 물속에 들어갑니다. (저는 물이 너무 차가워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싶었지만, 실제로는 혈액순환을 촉진해서 면역력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핀란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사우나인데요, ‘사우나’라는 단어가 핀란드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호수에서 수영하고, 사우나에서 노곤함을 즐기는 무한루프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가 훌쩍 지나가더라고요.+_+ 개인적으로는 헬싱키 근교 sipoonkorpi 국립공원의 kuusijärvi 호수와 사우나를 강력 추천드립니다.

    푸릇푸릇한 여름의 호수

    겨울 얼음 호수
    달궈진 돌에 물을 뿌려 나오는 증기를 이용하는 핀란드식 사우나
  3. #3 – 채집

    핀란드에는 ‘모든 사람의 권리(Jokaisenoikeude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공유지이든 사유지이든 소유권과 무관하게, 인간이 자연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할 경우 해당 토지에서의 하이킹, 수영, 식물 채집 등 자연이 주는 혜택을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연을 훼손해서 안 되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해서 안 되는 등의 제약은 있으나, 기본적으로 누구든지 자연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합니다.

    마침 핀란드 딸기는 여름철에 수확을 하기에 저도 이번에 호기롭게 딸기를 따러 나섰으나, 뜨거운 햇빛의 공격으로 역시 사 먹는 게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작고 소중한 딸기

    딸기뿐만 아니라 버섯 역시 생각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다만 평지에 위치한, 접근하기 쉬운 곳은 이미 누군가 수확을 완료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숨겨진 곳을 찾아야 합니다. 현지인들에게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 스팟이 있다고 하던데···. 여행객인 저는 그저 지도에 의지하여 움직여 보았습니다. 숲 곳곳에 숨어 있는 버섯을 발견할 때는, 마치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버섯 채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독버섯을 구분하는 능력인데요, 실제로 도서관에서 버섯 백과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인터넷으로 독버섯에 대해 찾아봤는데요, 이리저리 비교해봤으나 여행지에서 독버섯을 먹을 순 없기에···. 아쉽게도 맛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소중한 버섯
    버섯 백과

🏢 도시

한적한 마을에서의 힐링을 뒤로하고, 헬싱키로 향했습니다. 기차로 3시간 남짓 가야 하는데요, 숲을 지날 때는 종종 인터넷이 원활하지 않아 심심함에 기차 곳곳을 구경하다가 흥미로운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놀이방이었는데요! 생각보다 넓게 설계된 공간에 놀랐습니다. (참고로, 아이를 태운 유모차와 함께하는 승객은 헬싱키 시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나라인 만큼, 혹시라도 방문 계획이 있다면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_@)

기차 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잘 조성된 놀이방

헬싱키 대성당, 미술관 등 여러 관광지를 제치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소는 바로 헬싱키 중앙도서관인 ‘Oodi’입니다. 관광 일정 중 뜬금없이 도서관이 웬 말인가 싶겠지만, 이곳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었습니다. 역시나 어린이들을 위한 넓은 공간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어른들도 누워 있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저희 일행은 도서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중 닌텐도 스위치(!)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해 오랜만에 게임을 즐겼습니다. 이 밖에도 3D 프린터, 재봉틀, 악기 대여까지 가능한, 그야말로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타국에서 찾은 익숙한 즐거움
단돈 6유로로 무민 에코백 만들기
재봉틀도 사용할 수 있고, 뒤에 보이는 계단에 누워 있어도 됩니다!

에필로그

화창한 헬싱키

핀란드는 올해까지 8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로 선정되었습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짧게 머물렀던 제가 느낀 건 ‘일상 가까이에 있는 여유로움’이었는데요, 도시 인근에 있는 숲과 호수, 그리고 평화롭게 커피 한 잔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작은 행복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처럼, 우리 모두 작고 가까운 행복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